2023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렸던 아시안게임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신체 운동을 통해서 경기를 치르는 체육 스포츠가 아니라 지능적으로 머리와 손을 이용해 대결을 치르는 '바둑'과 'e스포츠(프로 게임 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각 종목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한 신진서 9단과 ‘페이커’ 이상혁 선수 모두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후, 같은 해에 펼쳐진 세계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글에서는 조금 특별한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바둑과 e스포츠. 서로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접점이 많은 게임이다. 시니어 세대를 사로잡은 바둑과 e스포츠 중에서 젊은 세대의 인기를 독차지한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 우주의 원소보다 경우의 수가 많다는 바둑
바둑은 5세기~7세기 때부터 시작된 역사가 깊은 게임이다. 현재도 바둑과 장기, 체스와 같은 전통적인 보드게임은 모두가 즐기는 일종의 스포츠이다. 세 종목은 모두 아시안게임으로 지정이 되기도 하였다. 현대의 보드게임뿐만 아니라 '경쟁 온라인 게임(PVP)'들도 근본적으로는 바둑과 같은 규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바둑은 내 돌을 사용해서 상대방보다 더 많은 '집'을 만드는 것이 승리의 목표이다. 돌을 1번 두는 것이 각자의 차례다. 돌을 하나하나 두는 순서마다 수많은 '심리전'과 '수'가 오간다. 하나의 바둑돌이 게임의 흐름을 한 번에 뒤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매우 많아 다양한 대국, 공략 방식이 존재한다.
>> 100명이 넘는 챔피언들이 자웅을 겨루는 리그 오브 레전드
현대 온라인 경쟁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바둑의 승리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 경쟁 게임의 최종적인 목표는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리그 오브 레전드’ 또한 마찬가지다. 게임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며 각자 턴(차례)을 가지고 다양한 수싸움을 벌이면서 상대편의 넥서스(기지)를 파괴하는 팀이 최종 승리를 쟁취한다.
게임을 10명이서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우의 수와 심리전들이 생기고 이는 게임을 더욱 복잡하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5대 5로 진행하면서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근거를 찾고 자신의 차례에 이득을 보는 것. 바둑과 매우 유사한 원리이다.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는 '한 수'가 바둑에도 있듯이 롤에도 '한타', '용싸움', '바론 싸움'과 같이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타이밍이 존재한다. 롤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꾸준한 개선과 신규 콘텐츠 추가를 통해서 새로움을 더했다. 시대에 따라 바둑의 기풍이 달라지듯이 롤도 해마다 색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 바둑과 리그 오브 레전드,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게임 전문 해설위원들은 두 게임의 공통점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롤은 턴제 게임이다. 바둑, 체스와 같이 서로가 각자의 차례에 이득을 보고 상대방의 수를 읽어 대비하는 게임이다."
이처럼 두 게임 모두 각자의 차례에서 최선의 수를 두고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바둑과 롤은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프로 대회가 활성화됐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바둑의 응씨배와 롤드컵(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 선수권) 모두 어마어마한 상금을 자랑하는 대회다. 바둑 마니아들이 바둑 기사들의 치열한 수싸움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동안, 롤 프로게이머들은 화려한 한타 싸움(여러 명이 모여 벌이는 전투)으로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바둑에서 기보를 통해 기사들의 수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전략적인 묘미를 곱씹었다면, 롤은 게임의 재방송을 보며 선수들의 판단과 뛰어난 플레이를 다시금 느껴본다.
바둑과 롤이 국민 게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접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바둑판과 돌이 있다면 어디서든 바둑을 즐길 수 있다. 이제는 가정마다 있는 컴퓨터에 롤을 설치해 플레이할 수 있다. 접근하기도 쉬운 데다가 주변에 같이 즐기거나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많다.
바둑을 배울 수 있는 바둑학원이나 강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유튜브에서도 바둑 전문 채널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또한 5급, 7단, 9단과 같이 단급제도를 바탕으로 등급을 매겨서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는 롤에서도 동일하다. 게임 내에서 브론즈, 골드 같은 자신의 랭크(등급)를 바로 파악할 수 있고, 유튜브에서 최신 정보나 실력 향상법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환경이 한국을 전략싸움 강국으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둑과 롤은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만큼 앞으로도 국민 게임으로서 강력한 위상을 유지할 것이다. 기원과 역사는 다를지언정 수싸움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동일했다. 상대방과의 경쟁 속에서 나만의 수를 두고 흐름을 읽으며 승리를 쟁취하는 것. 그것이 바둑과 롤뿐만 아닌 모든 게임의 매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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